유실물 관리인

 

1화 첫 출근

 

 

비가 내렸다.

 

장마철도 아닌데 하루 종일 하늘이 흐리더니, 퇴근 시간쯤부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도윤은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면서 우산을 접었다. 우산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고, 신발 밑창이 젖었다.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오는 곳인데.

왜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걸까.

 

역 안은 퇴근 인파로 가득했다. 누군가는 우산을 잃어버렸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떨어뜨렸고, 누군가는 이어폰을 흘리고 갔다. 도윤은 그 사이를 비집고 걸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문을 열고 들어가 아래로 향했다. 지하 2층 끝자락에 도착했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구석에 낡은 문 하나가 있었다. 문 위에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글씨가 반쯤 벗겨져 있었지만 읽을 수는 있었다.

 

[분실물 보관소]

 

도윤은 잠시 그 앞에 서 있었다.

 

또 그 느낌이었다.

낯선데, 낯설지 않은.

처음 보는데, 어딘가 알 것 같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 기억력이 나쁜 편인데, 그냥 착각이겠지.

 

도윤은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도윤은 고개를 들어 [분실물 보관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기가 맞는데..."

 

덩컹,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서서히 열리는 문 안에는 깨끗하게 정리한 백발과 멀끔한 정장을 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눈 가의 주름은 깊었지만, 눈빛은 이상하게 맑았다. 도윤을 한참 바라보다가 정신차리고 짧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기로 한 이도윤입니다."

 

*

 

사무실은 좁았다.

 

벽면을 따라 철제 선반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고, 선반 위에는 수많은 물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지갑.

우산.

가방.

모자.

휴대폰.

인형.

구두.

바지.

 

그리고 구석에, 낡은 백팩 하나.

 

도윤은 그 백팩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앉게."

 

노인의 말에 도윤은 정신을 차렸다.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노인은 책상 건너편에 앉아 그를 바라봤다. 뭔가를 재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야간은 처음인가?"

 

"고객 응대는 해봤습니다."

 

"... 그런 거 안 물어봤네."

 

"..."

 

"밤 근무를 해본 적 있나?"

 

도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입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서랍을 열어 열쇠 하나를 꺼내 들었다. 녹이 슨, 작고 낡은 열쇠.

 

"저기, 창고 열쇠이네."

 

도윤은 노인의 시선이 가르키는 사무실 안쪽을 바라봤다. 낡은 철문 하나가 있었다.

 

"저기 있는 물건은 건드리지 말게나."

 

"네?"

 

"...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물건일세."

 

분실물 보관소에 주인을 찾지 못한 물건이 있다는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근데 노인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그리고 슬퍼보였다.

 

"특히 밤에는."

 

도윤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산을 챙기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문 앞에서 멈췄다. 노인은 천천히 돌아 도윤이를 봤다.

 

"하나만 기억하게."

 

"네?"

 

노인의 시선이 창고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도윤에게로 돌아왔다.

 

"전화가 와도 받지 말게."

 

"...네?"

 

"절대로."

 

철컥. 문이 닫혔다.

 

*

 

사무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빗소리만 들렸다.

 

도윤은 사무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첫날부터 이상한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나이도 많고 좀 특이한 사람인 모양이다. 그저 그뿐이었다. 별거 없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오후 11시 17분. 야간 근무는 새벽 5시까지. 앞으로 여섯 시간 가까이 이곳에 혼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지루함이 몰려 왔다.

 

그때였다.

 

띠리리리— 벨소리가 울렸다.

 

도윤은 자동으로 자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벨소리는 계속 울렸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소리는 사무실 안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도윤은 천천히 일어나 조심스럽게 낡은 철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 문 틈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빛이 깜빡였다.

 

문고리는 몹시 차가웠다. 분명 잠겨 있던 문이었다. 그러나 벨소리는 그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요즘 스마트폰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그래 마치 십년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사용하던 낡은 휴대폰에서 울리던 벨소리 똑같았다.

 

띠리리리— 도윤은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이상하게 손바닥이 끈적이고, 식은땀이 맺혔다.

 

**

 

벨소리가 뚝 끊겼다. 동시에 철컹, 창고 안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도윤은 얼어붙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을 텐데.

 

툭. 툭. 툭.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다. 일부러 물건을 바닥에 던지는 소리 같았다.

 

그 순간, 문틈 아래로 무언가가 천천히 밀려 나왔다. 도윤은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찍었다.

 

"아씨.."

 

아픈 엉덩이를 만지면 일어나다가 낡은 가죽 지갑을 발견했다. 검은 얼룩이 잔뜩 묻어 있는 가죽 지갑이었다. 도윤은 숨을 멈췄다.

 

그때.

 

"도윤아."

 

목소리가 들렸다.

 

도윤은 굳어 버렸다.

 

분명 아무도 없었다. 사무실 안에 자기 혼자였다. 근데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쉰 목소리. 오래된 것 같은, 어딘가 익숙한 것 같은.

 

"도윤아."

 

또 들렸다.

 

이번에는 등 뒤에서.

 

도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책상 위, 아까까지 없었던 낡은 2D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액정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단 한 줄. [수신 중] 전화는 계속 울리고 있었다.

 

도윤은 그 자리에 서서 폰을 바라봤다. 받으면 안 된다고 했다. 백발 노인이 분명히 말했다. 절대로. 근데...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도윤아“

 

많이 들어본 목소리, 이상하게도 잊고 있었던 목소리였다.

 

손을 천천히 폰 쪽으로 뻗었다.

 

 

- 1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