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타가 알려주는 알쓸신잡 9일차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쓰던 물건들이 망가지는 날들이 찾아올거야. 그럴 때 우리는 그 물건의 부품을 바꿔서 수리를 하려고 하지.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부품을 바꿔 나가다 결국 그 물건을 구성하는 모든 부품을 바꿨다면, 그건 우리가 과거에 썻던 물건과 같은 것일까?
이 질문은 약 2000년 전부터 계속 비슷한 형태로 회차되고 있어. 고대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 그가 타고 더니건 배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보존되어져 왔다고 전해지지.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배를 구성하는 부품이나 골격 같은 것이 망가졌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망가진 부분을 교체했을 거야. 결국에는 모든 부품이 교체가 되었을테지. 이때 '부품이 모두 바뀐 이 배는 정녕 테세우스의 배가 맞는가?'가 이 논제의 시작이 되었어.
시간이 지나면서는 '만약 태세우스의 배에서 교체된 나무들로 새로운 배를 만든다면, 새로 만들어진 쪽이 진짜 태세우스의 배일까? 아니면 원래 있더뉴쪽이 진짜일까?' 라는 논제로 발전하기도 하였지.
이 논제에 정답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어. 그래서 이 논제는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묻는 대표적인 철학적 논제로 남아있어.
이 질뮨은 우리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 예를 들어 우리 인간의 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세포들이 죽고 새로 생겨서 유리위 몸을 구성해 나가. 즉 어린 시절위 우리와 현재의 우리는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완전히 다르다 할 수 있는 거지.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같은 대상으로 인식을 해. 그렇다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같은 대상으로 인식허게 만드는 것은 몸일까? 기억? 아니면 경험에 의한 것일까?
철학에서 시작된 이 질문은 현재 인공지능, 복제인간과 같은 미래의 기술을 논의할 때 항상 거론되는 내용이야. 걀국 태세우스의 배는 진짜 배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무엇이 한 존재를 그 존재답게 만드는가?"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묻는 질문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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