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 무도병에 대하여
중세시대 무도병이라고 하면 14~17세기 유럽에서 나타난 집단적 이상 현상을 말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경련, 종교적 환각, 비명, 황홀 상태, 이상 행동 등을 보였으며, 그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춤추는 전염병’ 또는 무도병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1374년 신성로마제국 아헨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이때 사례를 성 요한의 춤이라고 부릅니다. 6월 24일은 성 요한 축일을 맞아서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습니다. 이때 어디선가 한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이 춤이라는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춤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광적으로 소리나 비명을 질렀으며 가끔 자신이 피의 강 속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고 하거나 죄를 고하기도 했으며 비정상적으로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에서 피가 나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으며 탈구가 되기도 했고 뼈가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온몸이 땀과 배설물로 범벅이였고 종종 근육이 과도하게 수축되면서 복부가 터질듯 부풀기도 했고 지쳐 쓰러졌을때 손목이나 허리에 감은 붕대를 꽉 조이거나 맞았을때 고통에서 어느정도 해방되었다고 합니다.독일 지역에서 시작된 이 증상을 가진 같은 사람들은 네덜란드의 여러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이 무리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설이 있기는 합니다. 가장 유력한 설은 집단 히스테리입니다.

1374년 라인강 대홍수는 중세 유럽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 중 하나로, 장기간의 강우와 녹은 눈으로 강의 유량이 증가하면서 심각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입혔습니다. 또한 1347년~1351년 흑사병이 유럽을 휩쓴 이후 사회 분위기는 매우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홍수와 같은 재난으로 두려움에 빠진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가 집단적으로 확산되면서, 이것이 1374년 아헨에서 시작된 춤추는 전염병(무도병)의 원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증상은 몇주에서 몇달에 걸쳐 점차 사라져갔고 참여자들도 어느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도병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1418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지역(당시 신성 로마 제국령)에서도 춤추는 전염병이 발생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이전 사례보다 더욱 격렬한 양상을 보였다고 전해지며, 일부 기록에서는 사람들이 벽이나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고, 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잃거나, 포효하고 거품을 무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이후 스트라스부르 지역에서는 1418년과 1518년 두 차례에 걸쳐 집단적인 춤추는 전염병 현상이 기록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흔히 성 비투스의 춤(St. Vitus’s Dance)이라고 불렸습니다. 성 비투스는 중세 유럽에서 무용수, 간질 환자, 배우 등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습니다.당시 사람들은 무도병을 성 비투스와 관련된 질병으로 받아들였고, 성직자들은 환자들을 성 비투스 신전이나 성당으로 순례 보내 기도와 의식을 통해 치유를 시도했습니다. 실제로 일부 환자가 회복되었다는 기록이 남으면서, 이 현상은 성 비투스의 병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습니다.

곰팡이에 오염된 곡물을 먹고 감염되는 맥각중독의 환각 증상이 원인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영국령 아메리카 대륙에서 청교도 사회를 중심으로 벌어진 대규모 마녀재판인 세일럼 마녀재판에서도 소녀들이 집단적인 이상 증상을 보였고, 이러한 증언과 행동은 마녀재판이 확산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를 맥각중독과 연결하는 주장도 있으나, 역사학자와 의학자들은 두 사건 모두 맥각중독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며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도병이 발생한 대표적인 지역들을 살펴보면 당시 사회가 겪었던 재난과 불안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1374년 아헨에서 발생한 성 요한의 춤은 흑사병 이후의 사회적 혼란과 라인강 대홍수 같은 재난이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1418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발생한 성 비투스의 춤은 백년전쟁과 프랑스 내부의 아르마냐크파와 부르고뉴파의 갈등과 내전, 신성 로마 제국 내부의 권력 갈등 등 당시의 불안정한 상황이 배경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1518년 두 번째 스트라스부르 성 비투스의 춤은 이미 과거에 비슷한 사건을 경험했던 지역 사회였기 때문에 이전 사건에 대한 기억과 문화적 공포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일럼 마녀재판 역시 맥각중독보다는 청교도 사회가 겪고 있던 사회적 불안감과 압박,마을내의 갈등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발생한 사건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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